프로이트의 ‘억압’과 ‘웃음’
독일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무렵에 세상에 태어난 정신분석학은 정신의학, 심리학과도 구별되는 새로운 ‘인간에 관한 학문’이었습니다. 프로이트 본인은 정신분석학을 환자치료 즉, 임상에만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당부하였지만, 후대 학자들은 정신분석학을 철학, 인류학, 문화사, 정치학 등 다방면에 활용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현대철학의 새로운 흐름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프로이트 본인은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정신분석학이 있었기에 인문학 전반이 훨씬 풍요롭고 다채로워 졌습니다. 1968년 프랑스를 뒤흔든 ’68혁명’ 당시 젊은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허버트 마르쿠제 같은 인물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보다 더 실천적인 학문으로 확장시킨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프로이트의 계승자를 자처한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논술개그> 시리즈의 기획과정에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중요한 텍스트였습니다. 현재 공연 중인 시즌1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곧 선보일 시즌2에서는 프로이트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핵심 키워드는 ‘억압’과 ‘무의식’입니다. 다소 쉽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인간은 마주하기 괴롭고 고통스러운 생각, 기억, 이미지 등을 ‘의식’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즉, 억압합니다. 억압된 생각, 기억, 이미지 등이 모여있는 곳이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은 평소에는 억압되어 있지만 틈만 나면 의식의 체계로 돌아옵니다. 무의식은 우리의 감각으로 직접 경험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증상’, ‘징후’,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예가 꿈, 말실수, 농담 등입니다. 이러한 예들에 대해서 프로이트가 쓴 책들이 [꿈의 해석](꿈),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말실수),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농담) 입니다.
얼마전 칼럼에서는 개콘의 <누려>와 <두근두근>이라는 코너의 웃음코드가 ‘무의식의 귀환’을 다루고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개그에서도 무의식은 즐겨 다루는 소재입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과 웃음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던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는 웃음의 종류가 세분화됩니다. 프로이트는 웃음의 종류인 농담-희극-유머를 각각 분류하고 서로 다른 것으로 취급합니다. 이 중에서 특히 무의식과 관련된 웃음은 ‘농담’입니다. 농담에는 구조적으로 무의식과 억압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주장하기를, 농담은 억압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프로이트는 어린이의 ‘천진난만함’을 말합니다. 아이들은 의미없는 말장난에 즐거워 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루어지는 언어행위는 어른들 입장에서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천진난만함에는 아무런 억압도 없습니다. 그래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농담이 뭔가 억압된 것을 전제로 하며 그 억압을 우회하는 것인데 반해,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은 아무런 억압도 전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성인 남성이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흉내낸답시고 성인 여성의 치마를 들춘다면 우리는 그것을 천진난만함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추행 아니면 똘아이 입니다. 보통의 어른에게는 억압이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어른의 행위는 천진난만함으로 간주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를 읽었지만 천진난만함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논술개그> 공연을 진행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논술개그>의 중고생 버젼만 되더라도 중고생 관객들에게는 이미 억압이 형성되어있습니다. 관객 참여하는 부분에서도 중고생 관객들은, 해도 되는 웃긴 말과 해서는 안되는 웃긴 말을 스스로 구분합니다. 성인 관객들은 그 억압이 더 강합니다. ‘이런 말은 하면 안되겠구나…이 정도 농담은 해도 될거 같다..’라는 식의 자기검열(억압)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초등학생 버젼의 <논술개그>는 상황이 다릅니다. 물론 초등학생들도 나이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억압이 현저히 적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관객이 개그에 참여하면서 던지는 웃긴 말은 전혀 상상 못한 어휘가 많이 등장합니다. 어른 입장에서 보면 기겁을 할 말도 튀어나옵니다. 예를들면 <논술개그> 시즌 1에 등장하는 [김선생]이라는 코너를 보시죠.
이 코너에서는 개그맨 배우가 여성 관객에게 ‘OO가 너 어떻게 괴롭혔니? 편하게 얘기해봐’라고 물으면 관객의 반응에 따라 배우가 리액션을 하면서 웃음을 주는 코드입니다. 보통 중고생 이상 성인 관객들의 반응은 ‘때렸어요’, ‘꼬집었어요’, ‘약올렸어요’ 정도입니다. 조금 심한 멘트가 ‘아이스께끼 했어요’입니다. 어른 관객들에게는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멘트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 멘트만 되도 개그맨 배우들이 관객을 웃길 수 있는 충분한 ‘꺼리’가 됩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관객들은 그런 한계가 없습니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하기 어려운 멘트를 스스럼 없이 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탓할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억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에이~ 애들이 하는 말이잖아…’라고 얘기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억압 없음’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표현입니다. 저희 제작진들도 이러한 아이들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여 더욱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공연의 모니터링과 평가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지금까지 프로이트가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언급한 ‘천진난만함’이 실제 공연에서 예증되는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저희도 끊임없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